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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연산군은 흥청(興淸) 때문에 결국 흥청망청(興淸亡...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연산군은 모친의 시해에 대한 복수심과 적개심을 흥청(興淸)에 기대어 음주가무에 몰두하며 잊고자 했다. 그러나 억울함과 분노는 여전했고, 결국 국정은 흥청망청하게 되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조선의 왕 연산군은 세자 시절 어린 나이에 모친이 폐위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미의 죽음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성장했고, 즉위를 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억울하게 죽었다.” 혹은 “신하들이 이를 숨겼다.”라는 것을 알고서는 점차 포악해졌다. 연산군은 요즘으로 보면 분노조절장애와 화병을 앓게 된 것이다. 연산군은 억눌린 분노와 상실감을 쾌락으로 잊고자 했다. 그래서 술과 음악, 가무와 여색을 가까이했고, 그러한 말초적인 자극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잠시 잊게 해 주는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연산군은 밤마다 연회를 열고, 미녀들과 가무에 몰두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흥청(興淸)이란 궁중의 기녀들이었다. 연산군은 기녀들을 상중하로 등급을 매겨서 훌륭한 기녀들은 흥청(興淸)이라고 부르고, 그 아래 단계로 운평(運平)과 광희(廣熙)를 두었다. 흥청(興淸)으로 적합하지 않으면 운평(運平)으로 내렸고, 만약 흥청이 죄를 범하면 외딴 장소에 가두어 두었다가 과실을 뉘우치고 마음을 고치면 다시 흥청으로 불러들였다. 연산군은 신하들에게 “소위 흥청(興淸)이란 간사하고 더러운 기운을 깨끗이 씻으라는 뜻이요, 운평(運平)은 태평한 운수를 만났다는 뜻으로 지은 것인데, 어떠한가?”라고 묻자, 승지들은 이구동성으로 “칭호가 매우 아름답습니다.”라고 아부성 답을 했다. 흥청 때문에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연산군은 흥청(興淸)은 3백 명으로 하고, 운평(運平)은 7백 명을 정원으로 하고, 광희(廣熙)도 수를 늘리도록 했다. 그러나 지방에 있던 운평들은 이미 여러 차례 뽑혀 올라와